[본문] 구 중앙정보부가 망가트린 장희빈의 아들,경종의 의릉(懿陵) 오랫동안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며 정자각 앞에 연못을 파고 각종 정원수를 심어 변형시켜놓았던 것을 문화재청이 10년에 걸쳐 복구하여 지금의 모습을 되찾은 조선 20대 경종(景宗, 1688~1724)과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 1705~30) 어씨의 능.
[본문] 태조 이성계에게 버들잎 떠있는 물바가지를 건넨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貞陵) 태조는 도성 안에 왕릉 터를 정하고, 강씨 봉분 우측에 자신의 봉분인 수릉(壽陵)까지 정하고, 수릉의 능호를 정릉(貞陵)으로 정하였다. 조선 왕릉 첫 능호인 정릉에서 오늘날 중구 정동이 유래되었다. 태조에 이어 즉위한 태종은 능역 100보 근처까지 주택지로 허락하고, 광통교(현재의 광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능의 석물 중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본문] 조선왕릉 탐사 세번째.세곡동 안기부옆의 헌인릉(獻仁陵) 헌릉(獻陵)은 조선 3대 태종과 그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며, 이 능을 바라보아 왼쪽에 있는 인릉(仁陵)은 23대 순조와 그의 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이 헌릉과 인릉을 합쳐 ‘헌인릉’이라고 부른다.
[본문] 조선 23대 순조(純祖)와 비 순원왕후 김씨의 합장릉인 헌인릉의 인릉(仁陵) 조선 23대 순조(純祖, 1790~1834)와 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 1857) 김씨의 합장릉이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부터 외척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순조의 개혁정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제도의 문란, 매관매직 성행 등 정치기강이 무너져 사회가 혼란해졌고, 홍경래의
[본문]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헌인릉 헌릉(獻陵) 태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정안군에 봉해졌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정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태종은 1405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였고 조선왕조의 기반을 닦는 데 많은 치적을 남겼다. 원경왕후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태종이 왕권을 잡은 뒤
[본문] 조선왕릉 탐사 두번째.조선의 마지막 황제 홍유릉(洪裕陵)과 안타까운 사연의 사릉, 광해군묘 조선의비운의 황제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릉이 있는 호유릉(洪裕陵), 안타까운 단종 비의 사릉, 불운의 왕제 광해군묘와 그의 어머니 성묘
[본문] 태종 후궁으로 성종까지 7대의 내명부를 지킨 명빈김씨의 아차산 명빈묘(明嬪墓) 서울로 돌아오기위해 워키힐쪽으로 오는 아차산기슭에서 태종 후궁으로 성종까지 7대의 내명부를 지킨 명빈김씨의 아차산 명빈묘(明嬪墓)
[본문] 죽어서 어머니 발치에 묻힌 15대 폐위군주 광해군묘와 공빈(恭嬪)김씨의 성묘(成墓) 불운의 왕제로서 죽은후에 어머니 발치에 묻히길바랬던 15대 폐위군주 광해군묘와 공빈(恭嬪)김씨의 성묘(成墓)
[본문] 한많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의 사릉(思陵) 영월에서 가엾게 죽어간 단종을 기리는 한많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의 사릉(思陵)
[본문] 조선왕실의 마지막 황제 순종황제의 삼합장릉인 유릉(裕陵) 조선 마지막 능으로 27대 순종황제(純宗皇帝, 1874~1926)와 원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1872~1904), 계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삼합장릉이다.
[본문]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홍유릉의 홍릉(洪陵) 비운의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홍유릉의 홍릉(洪陵)
[본문] 조선왕릉 탐사 첫날 동구릉(東九陵) 조선의 왕과 왕비 17위의 유택이 마련돼 있는 곳으로 동구릉은 ‘동쪽에 아홉 개의 왕릉이 있다’ 하여 이름붙여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왕릉군이다. 1408년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태종의 명으로 파주, 고양 등지에서 좋은 묏자리를 물색하여 능지로 정해진 곳이다. 동구릉의 조성은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동구릉이라고 부른 것은
[본문] 조선 5대왕 문종의 동원이강릉 형식인 동구릉 현릉(顯陵) 현릉(顯陵).조선 5대 문종(文宗, 1414~52)과 현덕왕후(顯德王后, 1418~41) 권씨의 능이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이다. 1450년 왕위에 올라 언로를 열어 민의를 파악했고, 문무를 중용하고 군사제도를 개편하였다. 그러나 몸이 허약했던 문종은 재위 2년 4개월 만에 보령 39세로 승하하였다. 문종의 시호는 공순(恭順)이다. 부
[본문] 추존왕 문조대왕이된 효명세자의 동구릉 수릉(綏陵) 수릉(綏陵).추존 황제 문조(文祖, 1809~30)와 신정황후(神貞皇后, 1808~90) 조씨의 합장릉이다. 문조는 세자 시절부터 대리청정을 하면서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며, 모든 백성을 위한 정책 구현을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했다. 의릉 왼쪽 언덕에 장사지냈는데, 1846년 풍수상 불길하다는 논의가 있어 양주 용마산 아래로 옮겼
[본문] 조선왕조 20대 경종의 윈비 단의왕후의 동구릉 혜릉(惠陵) 혜릉(惠陵).조선 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端懿王后, 1686~1718) 심씨 능이다. 단의왕후는 타고난 품성이 어질고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덕을 갖춰 양전(兩殿)과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 데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숙종 44년 승하하여 숭릉 왼쪽 산줄기에 모셔졌다가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단의왕후에 추봉되었다. 능역이 전반적으로 좁고 길게 자리하고
[본문] 조선 14대 선조대왕의 능이 3개인 동원이강릉인 동구릉의 목릉(穆陵) 목릉(穆陵).조선 14대 선조(宣祖, 1552~1608)와 원비 의인왕후(懿仁王后, 1555~ 1600) 박씨 및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 김씨의 능이다. 목릉은 정자각 뒤로 세 개의 언덕이 보이는데, 동원이강의 형식의 변형이다. 제일 왼쪽에 보이는 것이 선조의 능이고, 가운데가 의인왕후, 오른쪽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본문] 조선왕조 18대 현종왕릉인 동구릉의 숭릉(崇陵) 조선 18대 현종(顯宗, 1641~74)과 원비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83) 김씨의 능이다.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로 봉림대군(효종)이 심양(瀋陽)에 볼모로 가 있을 때 태어났다. 1649년(인조 27) 왕세손에 책봉되었다가 1659년 효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본문] 조선왕조 21대 영조대왕과 정순왕후 김씨의 동구릉 원릉(元陵) 원릉(元陵) .조선 21대 영조(英祖, 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 1805) 김씨의 능이다. 1724년 즉위한 영조는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52년) 왕으로, 탕평책을 써서 당쟁의 근절에 힘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자신은 붕당정치의 폐해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본문] 조선왕조 태조이성계의 동구릉 건원릉(健元陵) 건원릉(建元陵)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능이다. 건원릉은 동구릉에서 가장 중앙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의 뛰어난 무장이었던 이성계는 1392년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왕위에 올라 새 왕조를 열었다. 태조는 7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정하는 등 조선왕조의 기틀을 이루어 놓았다
[본문] 조선조왕릉중 유일한 삼연릉인 동구릉 조선 24대 헌종 경릉(景陵) 경릉(景陵) 조선 24대 헌종(憲宗, 1827~49)과 원비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43) 김씨 및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 1904) 홍씨를 모신 삼연릉으로, 조선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다. 정면에서 보아 제일 왼쪽 봉분이 헌종의 능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본문] 인조계비 장령왕후의 동구릉에 있는 휘릉(徽陵) 휘릉(徽陵) 조선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 1624~88) 조씨의 능이다. 장렬왕후는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으며, 1651년 효종으로부터 자의(慈懿)라는 존호를 받아 자의대비라 불렸다. 10년 뒤인 1659년 효종마저 세상을 뜨자 대왕대비에 올랐다. 숙종 14년 자손 없이 승하하여 건원릉 서쪽 언덕에 안장되었다. 장
[본문]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 종묘(宗廟)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 종묘(宗廟)
[본문] 5대궁 탐사 5번째, 뼈아픈 역사를 지닌 경희궁 경희궁의 전신은 경덕궁(敬德宮)이었다 한일합방 즈음에 각궁궐의 건물들은 사방팔방으로 찢겨져나가고, 일본인 자제를 교육하는 경성중학교(옛 서울중고등학교)부지가 되버렸던 대궁 탐사 5번째, 뼈아픈 역사를 지닌 경희궁
[본문] 임진왜란으로 궁이되고, 퇴위당한 고종이 머물던 덕수궁그리고 고종즉위 40년 기념비 임진왜란으로 궁이되고, 퇴위당한 고종이 머물던 덕수궁그리고 고종즉위 40년 기념비
[본문] 오랫만에가본 벚꽃놀이,보트놀이하던 창경원에서 변한 창경궁 30년만에 가본 벚꽃놀이,보트놀이하던 창경원에서 변한 창경궁
[본문] 비정형적 조형미의 대표적인 궁,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동아시아 궁궐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으로 주변자연환경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을 찾아봤다.
[본문] 주말에 찾아간 조선의 정궐(正闕) 경복궁 서울에 온 첫주말 토요일에 조선의 정궐(正闕)인 경복궁을 찾아봤다. 예전에 가보았을때보다는 많이 복원이 이루어져있었다.
[본문] 세계지도(4번 줌,256배 확대) 세계지도(4번 줌,256배 확대)
[본문] 세계지도(3번 줌,64배 확대) 세계지도(3번 줌,64배 확대)
[본문] 한국지도 한국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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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무료_6학년_기출문제.pdf 무료_6학년_기출문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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